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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권당 덕수궁에서의 모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만권당 덕수궁에서의 모임,<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날짜, 시간 : 2021.2.18() 10:30 ~15:00

장소 :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점심식사& 커피숍 대화

참석자 : 김민주, 정창섭, 한은석, 윤여철

오랫동안 유지되던 거리두기 2.5단계가 설이 지나면서 조금은 완화되어 이번에는 3달 만에 모처럼 외부에서의 모임을 가졌다. 아침 기온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우리 4사람은 10 30분에 덕수궁 정문에서 만나 무료입장을 하고, 중화전 앞을 지나 석조전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관람했다. 본 전시는 주로 1930~40년대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며 암울한 일제시대를 힘겹게 버틴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을 담고있고, 한국전쟁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보여주고있다.코로나 사태에 직접 감상할 기회가 줄어든 젊은 관람객들이 엄청 많아서 새삼 놀랬다. 우리의 예상보다 다양한 분야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작가들의 실제 작품들과 그들끼리 주고 받은 편지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우리가 그 당시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암울한 일제시대에 우리가 익히 들어본 작가들이 동아, 조선일보 같은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고 여기에 당대의 유명 미술가들이 삽화를 그려냈던 80~90년전의 실제 신문들을 보여주는 아주 준비가 잘 된 전시회였다. 우리들의 학창 시절, 우리의 젊은 시절에 그리고 우리가 많이 들어본 노천명이나 윤동주의 시집을 발간하면 김환기 화백이 표지 그림을 그려주고,정말 멋진 예술가들의 작품에 탄성이 나온다.

()만은 보다 으로 쓰고 싶다. “보다 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라고 말하는 소설가 이태준의 말씀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본 전시회는 금년5월말까지 전시예정이고 입장료도 무료이니 많은 친구들의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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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9번째 만권당 모임의 주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말 영국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 유미주의란 예술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탐미주의라고도 부른다. 오스카 와일드는 1854 101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1871년 더블린 대학에서 그리스의 르네상스 고전문학 공부. 1874년 옥스포드 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46세로 사망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년에 발표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 고등학교 1학년때 국어 가르치신 곱슬머리 최기홍선생님께서 오스카 와일드를 극찬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할아버지인 켈소경으로 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돈많은 청년 귀족. 런던의 사교모임에서 우연히 도리언을 만난 화가 바질 홀워드는 그의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서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도리언이 바질의 집에서 그의 친구 헨리 워튼경 (이하 해리로 표현)을 만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해리를 똑똑하고 공상적이며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표현해서 그가 도리언 그레이에 끼칠 나쁜 영향을 미리 암시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이 책의 서문에는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로 시작해서 모든 예술은 무익하다로 마친다. 마치 이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바질이 완성한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 도리언은 본인이 얼마나 완벽한 아름다움의 소유자인지 놀라면서 그림 속의 자신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지속하겠지만, 본인은 점점 늙어갈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되고, 초상화 속의 젊음을 영원히 갖게 해 달라고 간절히 바란다. 자기의 미모에 도취해버린 19세기의 나르키소스, 도리언 그레이는 요즈음으로 보면 꽃미남이었던 것 같고 여기에 쾌락주의적인 인생관을 가진 해리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된다. 해리는 현란하고 달콤한 말솜씨로 도리언을 사로잡고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도리언를 부추긴다. 도리언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는데 서너개만 소개하면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야.”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은 얄팍한 사람들이지요. 세상의 진정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새로운 쾌락주의,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원하는 것이에요, 당신은 그것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리언은 17세의 아름답지만 가난한 연극 배우 시빌 베인을 만나 서로 사랑하기 시작한다.그녀의 모친과 남동생 제임스는 도리언과의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점점 사랑에 빠질수록 시빌의 연기는 차츰 엉망이 되어간다. 도리언이 바질과 해리와 함께 본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시빌은 최악의 연기를 보여주고 많은 관객들의 야유속에 해리와 바질도 중간에 돌아가 버리고,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시빌을 만나 원망하지만 도리안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부터 연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연기한다는 것은 모독이라는 시빌의 말에 실망한 도리안은 파혼을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그날 밤, 시빌은 연극 무대 뒤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도리언이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원인 제공을 했기에 살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해리의 충고대로 도리언은 본인의 잘못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 다음날도 천연덕스럽게 해리와 연극 구경을 하고, 이러한 도리언의 행동에 바질은 몸서리치도록 실망한다. 그러면서 도리언 본인의 외모는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유지하지만 자기의 초상화가 서서히 나이들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즉 도리언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고 초상화가 대신 늙어가게 만든다.

세월이 흘러 도리언의 38번째 생일날, 바질이 작품활동을 위해 파리로 떠나는 날 밤, 바질은 도리언을 찾아와서 진지하게 런던의 사교계에 떠도는 끔찍한 소문들을 알려주면서 주위 친구들에게 쾌락과 광기를 심어준 도리언의 진정한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호소하지만, 도리언은 오히려 화를 내면서 옥탑방에 숨겨놓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분명히 자신이 그린 도리언의 초상화였지만 징그러운 미소를 짓는 화폭 위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바질의 절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어. 이건 악마의 얼굴이야” “그건 내 영혼의 얼굴이에요.” “자네는 살아오면서 충분히 악을 저질렀어…” 악에 받친 도리언은 바질을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위해 사교계에서 만났던 화학처리 전문가 앨런 캠벨의 약점을 협박해서 질산칼륨으로 바질의 시체를 화학적으로 완전히 분해해서 증거인멸을 시도하여 완전범죄가 되지만 나중에 앨런도 본인의 행동을 자책하며 결국 자살한다.

초상화 속의 얼굴은 점점 늙고 추해지지만 도리언의 외모는 18년전과 똑같은 미소년의 모습, 점점 타락해지고 온갖 악행을 일삼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도리언은 런던 사교계에서도 외톨이가 된다. 어느날 항구근처의 마약매음굴을 찾았다가 제임스가 프린스 차밍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도리언을 죽이려 하지만 외모가 너무 어려보여서 도리언이 아니라고 착각해 죽이는 것을 포기한다. 점점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공포 속에서 살아가던 도리언은 기분전환 겸 토끼사냥에 참가한다. 매음굴에서 도리언 살해에 실패한 제임스 베인은 호시탐탐 도리언을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던 중, 토끼몰이꾼으로 변장해서 숲속에 숨어있다가 오히려 해리의 동생 제프리경의 사냥총에 맞아 죽는다. 이에 도리언은 심한 자책감에 빠져 시골의 조그만 여인숙에  머물면서 시골 농장 처녀 헤티 머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러한 도리언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은 해리이고 해리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도리언과 헤티와의 사랑은 이루질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아마 해리의 어릴적 충고가 없었더라면 도리언이 이 정도로 타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임스의 살해 위험에서 벗어나고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도리언은 이 모든 끔찍한 파멸의 원인은 그가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아름다움과 젊음 때문이고 바질이 그려준 초상화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본인의 외모가 변하지 않아서 결국 본인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초상화가 있는 방에 올라간 도리언은 몇 년전 바질을 찔러 죽였던 미술용 칼로 그림을 찌른다. 그러나 비명소리에 놀란 하인들이 방에서 본 모습은 벽에는 눈부신 미소년 도리언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바닥에는 여의고 온통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혐오스런 모습의 도리언 그레이가 손에는 칼을 든 채 죽어있었다.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영국 출판계는 처음에 쓰이지 않는 게 훨씬 나았을 것.” “사악한 자가 벌을 받았다고 해서 도덕적 작품이 될 수는 없다.” 면서 불속에 던져 버려야 할 부도덕하고 불결한 책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오스카 와일드의 삶에서도 그는 1895년 동성연애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아 2년 동안 레딩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897년 출옥후 오스카는 영국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파리에서 빈궁하게 살다가 1900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다행히 죽은지 100여년이 지나 1998년 트라팔카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동상이 세워지면서 명예가 회복되고, 그의 삶과 문학세계가 새롭게 조망받고 있다.

영화는 <Dorian Gray>라는 제목으로 2009년 영국에서 제작되어 올리버 파커(영국) 감독, Ben Barnes(도리언 그레이) Colin Firth(해리)가 주연한 영화이다. 흥행을 높이기 위해서 영화의 디테일 전개과정에서는 원작과 조금 차이가 났다.예를 들어 원작에서 바질을 찔러 죽인 것은 유화용 나이프였으나, 영화에서는 깨어진 유리조각으로 찌르고 시체는 큰 가방에 넣어 템즈강에 던져버린다. 여동생 시빌 베인의 복수에 실패하는 제임스는 사냥총에 맞아 죽는게 아니고 터널에서 기차에 치어 더욱 비참하게 죽는 등 철저하게 흥행위주로 제작되었다. 해리는 소설보다 더욱 심한 악의 화신으로 나오고 화가 바질은 아주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여주었고 특히 영화에서는 원작에 없는 너무 퇴폐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 예술성이 많이 떨어지는 흥미위주의 영화로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에 수입되어 상영되었으나, 선정적인 장면들 때문에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 속에 총 관람객 2,500명을 겨우 넘는 실패작으로 끝났다. 1945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는 예술적 측면에서 그런대로 우수하다고 한다.

점심식사후 덕수궁 옆 조용한 커피숍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과 몇가지 주제에 관한 토론 시간을 가졌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소설에서 여자들은 단지 조연일 뿐, 주인공은 완전히 대비되는 성격을 가진 3명의 남자 (도리언, 해리, 바질)이다. 도리언은 외모만 번지르하고 주관도 없는 백지상태의 단순한 청년이었으나, 그의 멘토 역할을 하는 귀족 쾌락주의자인 해리의 입을 통한 끊임없는 요설에 도리언은 단지 해리의test bed였다는 은석의 코멘트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했고, 순수한 예술가 바질은 속절없이 이 과정를 지켜보다가 딱 한번 충고한 죄로 어처구니없게 도리언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운의 남자라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사실 나는 도덕적 관점에서 도리언이라는 인물을 혹평했으나, 창섭은 도리언의 모든 내면이 초상화로 옮겨갔기 때문에 본인은 껍질로만 사는 것이라는 고차원적 의견을 제시했다. 창섭은 도리언의 멘토 해리경이 도리언을 이용해서 쾌락주의자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욕구분출을 한 것이고, 도리언이 찌른 것은 초상화가 아니라 사실은 자기의 양심을 찌른 것이라 했다. 민주는 주인공 3명을 코믹하게 (도리언 : ‘돌아버리겠어!’, 해리 : ‘Hurry-up!’, 바질 : ‘바지저고리’) 라고 정의하였다. 세계사에 조예가 깊은 민주의 설명을 요약해보면, 해리는 주인-대리인 (Principal-agent) 관계를 이용하여 백지상태의 도리언에게 자신의 쾌락주의 (Hedonism) 이론을 철저히 주입시켜, 도리언이 타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실제로 도리언은 해리가 의도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과격한 행동을 하고 악마가 되어간다. 우리의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최병호 선생님이 가르친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듯이,인간사에도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기에 누가 더 가지면 누구는 덜 갖고, 즉 바질과 도리언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하여간 이 소설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해리의 입을 통해 작가의 하고 싶은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고, 특히 사람대신 초상화가 늙어가도록 상정한 오스카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서로의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느라 거의 2시간 동안 얘기하다 주위를 보니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커피숍이 마음에 들었지만, 우리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만권당모임에서 3월에 읽을 책은 로마건국 신화를 얘기한 <아이네이스>이다. 2주전 셋째딸 결혼시킨 정창섭 동기가 오늘 점심식사와 커피까지 호스트해서 더욱 기분좋은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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