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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철 동기의《졸업 50주년 기념문집 『인왕 26』을 출간하며》

졸업 50주년 기념문집 인왕26을 출간하며

윤여철 (10)

 

드디어 우리의 졸업 50주년 기념문집, 인왕26이 출간되었다. 아랫글은 졸업 50주년을 맞이하여 야심 차게 계획한 졸업 50주년 기념문집의 탄생 과정과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지난 6개월의 기록이다.


연초부터 [만권당] 모임에서 졸업 50주년 기념문집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423일 운영위원회에서 계획을 발표해 승인받았다. 일단 개인 글 70, 소모임 글 20편의 기본 목표를 제시했고 여기에 [나의 좌우명과 묘비명]을 추가했다. 3년 전 23회 선배들이 만들었던 50주년 문집을 샘플로 잡아 추진코자 했으나, 과연 얼마나 많은 동기들이 호응하느냐가 관건이었다. 20여 개의 소모임 중 10개 정도의 모임은 매달 동기회 홈피에 모임 후기를 올리기에 큰 문제 없이 작성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으나, 나머지 10여 개의 모임 중에는 지역 모임(예를 들어, 대전, 강남, LA)도 있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모임(예를 들어 두문산악회, 보상모)도 있었다.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뒤,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5인 편집위원회(김경훈, 김민주, 백웅기, 윤여철, 정창섭)를 발족해서 백웅기 동기가 편집위원장으로서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각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단시간에 각자에게 업무를 즉시 부여하고 각자의 검토 결과를 신속히 총괄하는 순발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주었다. 또한 많은 동기들의 글을 받기 위해 만권당과 세기모 회원들이 참여하는 14명의 공동편집위원회를 발족해서 많은 동기들을 접촉해 원고를 받아내는 임무가 시작되었다. 출판은 23회 선배들과 동일하게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스쿨프린팅]이라는 사회적 장애인 기업을 이용했다. 문집의 표지 사진은 우리 동기 안태환 화백의 걸작, [Seoul26]호가 돛을 올리고 찬란한 태양을 맞으며 바다를 달리는 요트 그림을 임창준 작가가 고화질 사진 작품으로 특별 제작했다. 수고해준 두 동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안태환과 임창준.jpg


개인 글은 우영우 동기, 소모임 글은 김경훈 동기, 좌우명/묘비명은 손영일 동기로 접수처를 단일화하고 원고 마감일을 6월 말로 공지했다. 초기에 제출 건수가 너무 저조해서 7월 말로 연장하면서 각자 가까운 친구들을 접촉해서 개인 글 작성을 독려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역시, 창섭!! 그의 지속적인 각개전투 덕분에 개인 글 제출자가 50명에서 60명이 되고, 우리의 최종 목표 70명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드디어 8월 초, 69번째 권용원, 70번째 이웅수의 글이 접수되면서 목표 달성!! 우리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20(소모임 글 숫자)+50(졸업 50주년) = 70(우리 나이, 개인 글 숫자)이라는 수학(아니 산수) 공식이 이루어졌다.


문집의 목차는 [개인 글]을 맨 앞에, [나의 좌우명과 묘비명], [소모임의 역사], 특별코너(은사님 글, 50주년 기념행사 후기, 동기회 약사 및 행사, 졸업 50주년 기념 특별 재정 기여자)를 추가했다. 동기들의 개인 글 순서는 강용한에서 시작해 황진수로 끝나는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1974년 졸업 후 지난 50년간의 동기회 약사와 주요 행사를 권용기, 박찬욱 전, 현 총무가 말끔히 정리해주었다. 여기에 특별코너로써, 최병호 선생님의 우정포럼 강의 내용과 정완호 선생님의 개인 글도 게재했다.


대부분의 친구는 아래아한글(hwp file)로 작성했으나, 나처럼 MS Word에 익숙한 사람도 있고, 몇몇은 아예 문서작업을 못 한다고, 즉 노트북PC가 없어서 그냥 손으로 작성한 글을 제출하기도 했고 카톡으로 보내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물론 편집위원들은 글을 보내주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 기꺼이 컴퓨터로 글을 입력해 주었다.


지독히도 더웠던 85, 우리 5명은 출판사를 2번째 방문해 출판사 측에 초안을 선보이며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글을 준비했는지 모르겠으나, 초안을 프린트해보니 640페이지나 되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기에는 너무 두꺼워 이제는 오히려 페이지를 줄여가는 작업이 필요해서 우선 사진 숫자를 줄이기로 했다. 작성자의 얼굴 사진은 개인 글에만 싣고 소모임 글에서는 모두 빼기로 했다. 개인 글에 들어가는 사진은 최대 3(, 안태환, 정의찬, 정희전의 글은 사진 중심이라서 사진 숫자를 줄이면 의미 없는 글이 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3장 이상을 인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소모임 글은 최대 7장으로 정했고, 글의 분량도 이미 제출한 작성자에게 통보, 스스로 또는 강제로 줄이도록 했다. 놀라운 일은 대부분의 친구가 기꺼이 잘 따랐고, 오히려 많은 격려로써 우리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공동편집인1.jpg


이렇게 내용과 사진을 줄여서 간신히(?) 600쪽으로 맞춘 상태로 일단 외부 전문가의 교열과 교정을 받아서 맞춤법에 맞게 오탈자를 고치도록 했다.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 외부 전문가에 의한 1차 교정작업의 성과물을 823일에 받았는데, 우리 같은 사회의 엘리트 집단에서 우리나라 글을 썼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지 아무리 교정 전문가라도 별 코멘트가 없을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아마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 저 멀리 날아가고 엄청난 부분이 빨강 펜으로 고쳐져 있었다. 마치 신입사원의 보고서를 고참 대리가 모두 고치듯이. , 이토록 한글이 어려울 줄이야? 교정 전문가의 코멘트를 본문에 반영하는 작업은 민주 동기가 단독으로 처리하겠다고 자청해서 꼬박 3일 동안 힘든 작업을 해냈다. 땡큐, 민주!!


8월 말까지 출판사에 수정본을 제출해서 1차로 책자를 발간하기로 했으나, 여전히 서너 개 모임에서 원고에 추가하거나 신규 원고를 집어넣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우리를 바쁘게 했다. 이미 외부 전문가의 교정까지 완료된 시점이라 내부 상의 끝에 한두 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한 마음이다.


다른 고교 졸업한 친구들도 대부분 올해가 졸업 50주년이라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알아보았는데, 우리처럼 소모임이 많은 학교는 거의 없었고, 특히 100여 명의 동기들이 참여하는 기념문집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우리 동기들은 서울고 26회라는 사실에 한없는 자부심을 느낄 만했다. 참고로 우리들의 글은 5월 중순부터 평일에는 개인 글을 주말에는 소모임 글을 [우정포럼][강남에서 모임] 단톡방에 게재해왔으니 대부분의 동기들이 이미 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른 아침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개인 글과 소모임 글을 올려준 우영우, 정창섭 동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문집을 발간하는 데 있어서 출판사, [스쿨프린팅]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문집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구본수 실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사항과 거절해도 될 만한 일까지도 모두 흔쾌히 들어 주었다. 예를 들어 600쪽짜리 문집 360권을 출판사에 보관해달라는 어려운 부탁까지도 허락해 주었다. 물론 보관료 없이!! 역시 사회적 기업다운 면모를 느끼게 하는 배려였다. 회의를 시작할 무렵이면 사장님께서 커피와 비타민 음료까지 손수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하시어 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구 실장은 우리 문집 담당자로 이도경 팀장을 배정해 주었는데, 알고 보니 이 팀장은 회사의 에이스였다. 우리가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과 요청에 친절하면서도 정확한 답변을 주어 우리 편집위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한가지 에피소드, 며칠 전 우리가 막 출판된 책을 받으며 즐거워할 때, 이도경 팀장이 내게 했던 예쁜 짱이 잘 있나요?”라는 한 마디에 나는 완전 감동 먹었다. (‘짱이는 나의 개인 글의 주인공이자 나의 룸메이트 강아지이다.)


추석을 마치고 출판사에서 10월 초까지 4차에 걸쳐 1차 초안이 나와서 우리들의 최종 교정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검토하고 외부 전문가의 철자법 검토도 마쳤으나, 문단을 연결하거나 구분할 때 한 줄 띄기 등 우리가 검토할 일이 많았고 여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어떤 작품은 작성자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틀려있기도 했다. 교훈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어떤 동기가 작성한 글에서 교훈을 인용했는데 우리 편집위원들은 정확한 띄어쓰기를 확인하기 위해 졸업앨범까지 동원했다. 이창갑 교장 선생님과 함께 찍은 앨범 사진에는 <깨끗 하자. 부지런 하자. 책임 지키자.> 라고 되었으나, 교정의 교훈석에는 띄어쓰기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서초 교정의 역사관장이 보내온 자료에도 띄어쓰기가 없어서,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로 최종결정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신경 쓴 디테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은 예이다.


교훈.jpg


이제 우리 편집위원
5명에 얽힌 에피소드를 말하고자 한다. 편집위원장을 맡은 웅기는 지난 몇 달 동안 항상 시간에 쫓기는 원고 검토 및 제출 스케줄 속에서도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여 출판사에서 받은 원고를 즉시 우리들에게 배분해서 여유 있게 검토하도록 해주고 총괄적으로 출판사와 접촉하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해 주었다. 특히 웅기의 거의 아들, 딸뻘 되는 출판사 분들과 여러 번 회의 때마다 느낀 점은 참으로 겸손하고 예의 바른 총장님이라는 사실이었다.

경제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와 인문학 분야까지 100여 권의 책을 집필한 민주는 박학다식의 상징이요, 문장력의 대가이다. 아무리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이 제대로 안 통해도 일단 민주의 깐깐한 교정을 거치면 아주 부드러워지고 멋진 글로 재탄생되어 모두의 감탄을 자아낸다.


내가 볼 때 편집위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경훈. 웅기는 경훈이를 편집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찰떡보다 더한 끈기로 밤샘을 마다하지 않고 작업을 완수한 슈퍼맨.’이라고 평가했다. 지독히 더웠던 올여름, 낮에는 방학을 맞이한 손주들과 놀이동산 다니고, 동기들과 당구 치고, 심지어 산악마라톤을 뛰고 밤늦게 귀가해서 본인의 할당량을 시간 내에 완료하는 진정한 슈퍼맨.

창섭어미 닭이 병아리들 품듯 수많은 동기 모임을 일일이 보듬어주고’ (이것은 경훈의 평가) 편집위 초기에 동기들을 일일이 접촉해서 개인 글을 받아내느라 엄청 바빴고, 글을 받은 뒤에는 샅샅이 검토하는 디테일을 발휘했다. 실제 우리가 포기한 동기들에게도 창섭은 끈질기게 전화해서 원고를 받아내곤 했다. 어떤 친구는 이 나이에 무슨 글을.” “이런 글 쓰기가 싫어서 이과로 갔는데.”라고 했지만, 창섭에게 엮인 친구들 상당수가 결국 글을 제출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경훈이 문서 수정작업하고 있는데, 창섭의 수정 요구가 계속 날라와서, 다시 앞으로 가서 고치고또 수정하려고 하면 뭘 수정했는지도 몰랐을 텐데. 나는 생각해봤다. “우리 창섭 부지사, 차관 밑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완벽주의자 창섭의 등쌀(?)에 보고서 다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특출난 동기들 사이에서 어떤 연유로 너무도 평범한 내가 편집위원이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기념문집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라는 사관의 임무이기도 하고, 충무로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급할 때 출판사에 달려가는 미션도 있지 않았을까? 덕분에 나도 지난 몇 달 동안 600쪽의 글을 서너 번 읽으면서 각종 문단, 단락, 내용상의 오류 등을 체크했는데, 가장 내 가슴에 와닿았던 글은 8명의 동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2015년 하늘나라로 간 신재희 동기를 그리워하는 글이었다. 나는 재희를 만난 적이 없지만, 경희궁에서 한두 번은 스쳐 지나갔을 친구,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재희를 비롯해 먼저 우리 곁을 떠난 63명 동기들의 명복을 빈다.


공동편집인2.jpg


드디어, 1016일 목차와 원고의 쪽 번호등 세세한 부분까지 우리 5명의 모든 검토가 완료되어 출판사에 최종본을 보냈고, 철컥철컥 인쇄가 시작되었다. 1주일을 기다린 1023일 우리들이 출판사를 방문해서 두툼한 600쪽짜리 문집을 받는 순간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틀 후, 1025일 최평락 동기회장은 그동안 수고한 편집위원들을 초대해서 박찬욱 총무, 장천 2023년 동기회장과 함께 [능라도]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편집위원회 해단식을 열어주었다. 50주년 기념문집을 전달받은 최 회장의 첫 반응은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보다 더 값진 책이라는 코멘트였다.


해단식에서 문집전달.jpg


이 글을 마무리 짓는 1027일 오늘, 우리들의 50주년 기념문집은 이미 쏠비치 행사장에 도착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열리는 우리 동기들의 멋진 행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들의 희망 사항은 10년 후 다시 뭉쳐 졸업 60주년과 우리들의 팔순을 자축하는 문집을 한 번 더 만드는 것이다. 과연 그때가 오려나???

 

[알림] 문집은 500부를 제작했고 삼척 쏠비치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모든 참석자에게 배포한다. 동기회는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했거나 연락 가능한 모든 동기들에게 곧 제작할 2025년 탁상달력과 함께 기념문집을 발송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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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개인글 70편, 소모임글 20편에 동기회 약샤에 좌우명과 묘비명까지 목표 세웠을 때 '목표는 크게 가져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로 그대로 실현될 줄이야... 문집 제작에 참여해준 자랑스런 모든 동기들에게 감사드리며 뜨거운 박수 보냅니다.
    • 김용석
    • 2024.10.28 09:49
    대단합니다.
    영원히 남을 추억을 주신 노력에 진짜 감사합니다.
    수고 많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존경스럽습니다.
    그대들이 같은 동기고 친구라서 자랑스럽습니다.
    20+50=70
    완벽한 조화입니다
    엄청난 수비학의 결과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50주년 기념문집의 탄생과정이 잘 정리 됐네요. 26회 사관 윤여철, 멋진 친구가 있어 동기회의 활동이 하나 하나 기록되어 추억이 되니 감사하지요. 내 등쌀에도 옥고를 내준 친구들, 종국에는 70의 삶을 정리할 기회가 됐다고 오히려 감사해 하는 친구들이 있어 보람 찬 6개월의 시간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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