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은 유난히 더운 날씨가 오래 지속되었다. 새벽의 최저 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정말 오래 갔고, 최고 기온도 33도~35도 연속이었다. 만권당 네 명(손영일, 정창섭, 백웅기, 김민주)이 쿠바 작가 에드문도 데스노에스의 작품 <저개발의 기억>을 가지고 토론을 했던 8월의 마지막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5년에 출간된 이 작품의 원제는 [Memorias del subdesarrollo]이고 영어로는 [Memories of Underdevelopment]다.
우리는 토론을 마치면 항상 해당 작가가 속한 국가의 식당에
가곤 한다. 토론 후에 이태원의 쿠바 식당 ‘카페 쿠바노스(Café Cubanos)’에 가기 위해 이태원 녹사평역에
가까운 ‘카페 더 브레이브(Café The Brave)’에서 우리는 만났다. 예전에도
이 카페에서 모였던 적이 있었는데 카페 분위기가 젊을 뿐 아니라 토론하기에 적격인 방이 3개가 있어서
우리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쿠바(Cuba)는
미국 플로리다 바로 남쪽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카리브해의 동서로 길게 뻗은 섬 나라 쿠바에서
플로리다 마이애미까지 90마일밖에 안 된다. 이렇게 가까워도
한국인 중에 실제로 가본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 만권당 멤버 누구도 아직 쿠바에 가보지 못했다. 2014년에 미국과 쿠바는 국교 정상화를 했고, 올해(2024년) 들어 한국은 쿠바와 수교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쿠바에
갈 기회는 늘어나리라 본다.
쿠바에 가본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상하게도 쿠바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덕분 아닐까? 쿠바를 매우 좋아해
오래 살았던 헤밍웨이가 당시에 잘 알던 쿠바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데스(Gregorio Fuentes)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쓴 작품 <노인과 바다>를
우리는 잘 안다. 또 우리가 쿠바 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너무 잘 아는 것도 이유일지
모른다. 쿠바의 춤인 살사와 룸바, 입에서 향기 그득한 쿠바 시가, 사탕수수로 담근 럼주도 왠지 친근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1492년에 서인도제도로 탐험을 왔을 때 첫 항해에서 쿠바 섬을 탐사했다. 당시 콜럼버스는 에스파냐 아스투리아의 왕자 후안의 이름을 따서 후안의 섬(Isla Juana)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이름이 쿠바로 바뀌었다. ‘쿠바’ 이름의 유래는 원주민어 ‘쿠바나칸’에서 나왔다. ‘중심지’라는 뜻이다.
에드문도
데스노에스의 작품 <저개발의 기억>은 왠지 소설
제목 같지 않다. 무슨 회고록 같기도 하고 감상에 젖은 사회학 혹은 경제학 보고서 같기도 하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 2019년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친한 친구와
함께 망원동의 쿠바 바(bar)에 가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이전에
쿠바로 함께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틈틈이 만나는 공간이라서 그 바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쿠바 음악도 듣고, 쿠바
여행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쿠바를 매우 좋아해 여행 가이드도 하는 여성 분에게 내가 쿠바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바로 이 작품 <저개발의 기억>을 소개해주는
게 아닌가? 제목이 좀 어색해 당시에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는데, 만권당
모임에서 쿠바 소설을 고르려 하니 갑자기 이 작품 제목이 떠올랐다. 읽어보니 흥미로웠다.
이 소설을 쓴 에드문도 데스오네스(Edmund Desnoes)는 1930년생 쿠바 사람이다. 아바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대학을 나와 잡지 회사에서 편집 일을 했다. 그러다가 1959년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자 당시 살고 있던 베네수엘라에서 쿠바로 돌아와 쿠바 문화 기구인 '카사 데 라스 아메리카스'의 편집 주간으로 체제 안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 물을 많이 먹었기에 쿠바 체제에 흠뻑 빠져 계속 살기는 부담스러웠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에드문도는 사회주의 저개발 국가인 쿠바에 완전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쁘띠 부르주아였던 그는 쿠바 사회에서 결국 이방인이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초반이다.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본격화되자 소설 속 주인공은 부모님과 아내 라우라를 미국으로 보내고 혼자 살면서 아바나를 쏘다니면서 엠마, 엘레나, 노에미 등 여러 여자를 전전한다. 물론 자신이 틈틈이 느낀 생각을 일기에 담고 자신의 단편 소설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그는 살면 살수록 쿠바가 저개발 국가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쿠바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 끼여 미사일 위기까지 겪으면서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사회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부르주아 지식인은 슬프지만 살기를 원했다.
에드문도는
쿠바에서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담은 이 소설을 1965년에 출간했고,
2년 후 토머스 구티에레스 엘레아 감독의 도움으로 영화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새롭게 변화된 쿠바 사회의 이모저모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쿠바에 완전 정착하지 못하고 1979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자 미국에 망명해 뉴욕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1930년에 태어난 그는 2023년에 세상을 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가 2004년부터 칠레에서 중남미, 칠레 문학 박사 과정을 밞던 정승희님이 이 작품을 알게 되어 번역해 2009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번역이 매우 매끄러워 작품 읽기에 좋다.
우리는 카페 더 브레이브에서 토론을 마치고 이태원의 쿠바 식당 ‘카페 쿠바노스(Café Cubanos)’에 4시 30분에 갔는데 아뿔싸 4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브레이크 타임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우리는 부근의 멕시칸 식당 ‘바토스(Vatos)’에 들어갔다. 젊은 분위기에 외국인 손님도 많고 음식도 맛있었다. 아쉽게도 멕시코 식당에 갔지만 다음에 시간을 내서 정식 쿠바 식당 ‘카페 쿠바노스’에 재도전하리라.
첨부 파일을 보면 여러 사진과 함께 토론 주제와 토론 내용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