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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역사모임 [중림동 길] 후기

2024 4월 역사모임 [중림동 길] 후기

●일시 : 2024. 4.24. 10:30~14:00

●코스 : 충정로역~ 민영환선생 동상~ 프랑스대사관~ 서소문역사공원~ 김정호 기념비~ 약현성당~ 염천교 수제화거리~ 강희맹 집터~칠패시장~ 태평관 터~ 삼성본관~ 오찬 후 시청역에서 헤어짐

●참가자 : 김민주, 정창섭, 장천, 오석종, 이영수, 김영수,한준, 김경훈, 김춘도, 백웅기, 김창영, 한은석, 권호진, 윤여철 (14)


4월 역사문화모임은 김민주 동기의 해설로 중림동 일대 몇 군데 역사적 장소를 탐방하는 코스였다. 많은 친구들이 중림동하면 좀 낯설은 이름이라서 어디? 할것 같은데, 행정구역상 중림동(中林洞)은 지하철 충정로역의  남동쪽을 가리키며, 민주 동기는중림동은 약현중동의 가운데 마을 중() 그리고 한림동의 림()자를 써서 중림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림동이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기에 마포나루의 해산물들을 취급하는 수산시장이 있었고, 이 수산시장은 나중에 노량진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 이제 김민주 동기의 해설을 들으며 중림동길을 걸어보자.


충정로역을 나오니 충정공 민영환 선생(1861 ~1905.11.30 을사늑약 후 자진 순국)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왜 이곳에 민영환의 동상이? 원래 민영환의 동상은 1957년 안국동 4거리에 건립되었다가 1970년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옆으로 이전, 2003년 과거 민영환의 집이 있었던 조계사 근처 우정총국 뒤뜰로 옮겨졌으나, 2022년 거리 이름에 어울리는 이곳 충정로 역으로 이전해서 제자리를 찾았다. 동상 옆의 표지석에 의하면 동상의 방향은 경복궁을 향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자결로 순국하고 죽어서도 임금과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하겠다는 충정공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충정로라는 이름은 1884년 갑신정변때 일본공사였던 죽첨진일랑(竹添進一郞)의 성을 따서 죽첨정(竹添町)이라고 부르던 것을 해방후 충정공 민영환의 시호를 붙여 충정로(忠正路)라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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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로 43-12에 있는 프랑스대사관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이 1960년에 설계한 건물로 많은 건축가들과 [월간 SPACE]가 선정한 최고의 건축물이다. 2010년대에 노후한 사무동을 헐고 다시 지으려 했으나, 국내 건축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보존하기로 결정해서 몇 년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2023년에 성공적인 재개관을 했다. 참고로 리모델링 설계 책임자는 한국인 최초로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건축가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1866년 병인양요로 첫 군사적 충돌이 있었고, 1886년에야 비로소 조불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프랑스 대사관 부지는 원래 민영환의 땅이었다고 한다. 민주는 우리에게 초대 프랑스 플랑시공사(1853~1922)에 얽힌 안타까운 스토리를 들려줬다. 1890년 플랑시 공사는 조선 왕실의 초대를 받아 왕궁에서 무희들의 공연이 열렸고, 이때 리진이라는 무희를 사랑하고, 공사 임기가 끝나는 1893년 파리로 데려가 결혼식을 올렸다. (따라서 리진은 최초로 유럽 땅을 밟은 조선 여인) 라진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상류층과 잘 어울렸으나, 점차 고국에 가고 싶은 우울증을 앓기 시작, 사랑하는 부인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플랑시는 1896 3대 주한 공사로 자원하여 다시 리진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원래 리진은 무희였기에 귀국하자마자 고위 관료에게 끌려가 무희의 생활을 강요당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이 되었다.


다음 방문지는 서소문역사공원, 공식 명칭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다. 서가회에서 여러 번 갔었던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한양의 공식처형지로, 1801년 신유박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등 순교), 1866년 병인박해때 많은 순교자가 발생, 44분의 성인과 27명의 복자를 탄생시켰다. 1984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여 서소문공원 안에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19년 공식 개관하였다. 특히 이곳 서소문 성지에는 안중근의사께서 사형당하기 전 하늘을 공경한다는 의미의 <경천(敬天)> 이라고 쓰신 붓글씨 원본이 전시되어있다. 내가 못보던 뚜께우물터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망나니가 이곳에서 천주교도의 목을 친 후 우물 뚜껑을 열고 피묻은 칼을 씻은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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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 성요셉아파트가 언덕길을 따라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서있다. 1971년에 바로 옆의 약현성당에서(왜 성당에서?) 지은 이 아파트는 68세대 (262m2~112m2)인데1층에는 고소한 냄새의 참기름집, 방앗간, 정육점등 옛 모습 물씬 풍기는 상가들만 있는게 아니라 현대식 커피샵도 보였다. 언덕길을 내려와 다시 가파른 언덕 위 약현성당으로 향했다.


중림동 약현성당은 현존하는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물, 1892년 파리 외방전교회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고 완공했다. (참고로 명동성당도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1898년 완공됨) ‘약현(藥峴)’은 성당이 위치한 만리동 입구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으로, 옛날 이곳에 약초밭이 많았던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당은 1998년 술취한 행려자의 방화로 벽돌 구조물만 남기고 전소되었으나, 1년 반에 걸친 공사로 2000 9,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되었다. 약현성당 전망대에서 높은 건물들 사이로 저 멀리 숭례문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길이 칠패로이다

칠패로는 서소문공원에서 남대문 시장까지의 왕복 4차선 도로를 말하는데, 여기에 칠패시장이 있었고 (칠패시장은 나중에 남대문 안으로 이전하여 남대문시장이 됨) 동대문 근처의 배오개시장과 (나중에 동대문시장, 광장시장이 됨) 종각 근처의 시전상가와 함께 조선 후기의 3대 시장이었다. 그럼 왜 발음도 어려운 칠패시장(七牌市場)이라는 이름이 되었을까? 조선시대에는 한 무리를 지칭할 때 패()라는 단어를 시용했고, 포도청의 순라군이 감찰하는 8개의 패() 가운데, 이 구역이 7번째 구역, 즉 칠패(七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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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塩川橋)는 숭례문에서 중림동 약현으로 가는 다리로 옛날 이 자리에 화약을 제조하는 염초청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 하는데, 철길 위에 있기 대문에 기차에서 뿜어대는 연기가 많이 발생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수제화 거리는 광복 후 미군들의 손상된 중고 군화를 개조하여 국군의 군화나 다양한 신사화로 재탄생한 곳으로 당시 우리나라 구두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성수동에 대규모의 수제화거리가 조성되면서 이곳은 점점 쇠락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칠패로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1804~1866)조선의 구양수라 불리는 강희맹(1424~1483)의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강희맹은 서거정(1420~1488)과 함께 조선 초기의 유명한 문필가로 세종이 그의 이모부라고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앞을 지나니 웅장한 신한은행 본점 건물이 보이고 이 건물 뒤에 태평관(太平館)이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태평관은 명나라 사신들이 묵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사신이 묵는 동안 임금, 세자, 종친 등이 연회를 베풀었고 왕실의 혼례식장이나 과거시험장으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곳의 거리 이름도 과거 태평로(숭례문 로터리에서 세종로 4거리 까지의 1.1km, 현재는 세종로와 통합되어 세종대로로 개편됨)라 불리었다. 참고로 동평관은 일본 사신을, 북평관은 야인(여진)을 접대하던 곳이었다.


이제 2시간 반 동안 민주동기의 자세한 해설을 태평관 표지석 앞에서 마치고 (우리 모두 박수로 민주쌤의 수고에 감사!!!) 많이 배고픈 우리들의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 예전의 삼성본관 (지금은 부영그룹에서 사용하고 있다) 근처, 미리 봐두었던 제주백이라는 식당에서 제육볶음과 생선구이로 시원한 김치찌개와 함께 무료로 제공하는 생맥주와 계란후라이 까지, 단돈 만원의 식사치고는 정말 가성비 좋다고 모두들 만족한다. 게다가 텅 빈 식당에서 이바구하면서 어르신들 드시라고 3박자 커피까지 제공해 주었다. 오후 2시도 안되었으니 귀가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 근처 덕수궁 정원에 꽃구경 가자는 나의 제안에 권호진, 김영수, 이영수가 함께 가잔다. 마침 대한문 앞에서는 오후 2시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들은 대한문으로 무료입장, 많은 봄꽃들이 만개한 덕수궁 경내를 산책했다. 최근 복원된 돈덕전을 시작으로 석조전,정관헌, 석어당, 함녕전, 중화전등 주요 전각들을 오붓하게 돌아다닌 후, 김영수 동기가 사준 커피와 도너츠까지 배불리 먹고 기분좋게 헤어졌다. 땡큐, 영수!!


후기를 마치며 史官의 한마디, 너무 많은 분량의 해설을 단시간에 듣다 보니 제대로 소화를 못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인데 민주는 원고도 없이 (조선 왕릉에 갔더니 희전이도 그러던데~~)설명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해 보인다. 휴대폰 메모장에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했건만, 빠진 부분이 많아서 일부는 Naver 자료에서 참조했슴을 양해바란다.”

5월의 역사문화모임은530(), 졸업50주년 연계한 특별 역사탐방으로 KTX타고 현충사를 비롯한 아산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니, 관심있는 많은 동기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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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이리도 자세하게 기억하 썼을까, 놀랍네요. 앞으로 후기를 모아 책으로 발간하면 좋겠어요.
    • 정창섭
    • 2024.04.26 11:57
    명품 프로그램입니다.민주 명해설에 여철 명후기,항상 건강하세요^^
    윤사관 덕분에 다시 한 번 역사의 현장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민주쌤의 명품 해설은 가히 세계 최고 아니겠습니까? 기획, 해설, 예약, 후기 등 역사문화모임 운영팀 모두 고마워요. 현충사 방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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