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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대지> 3부작

독후감 - 펄벅의 <대지(The Good Earth)> 3부작

장왕록/장영희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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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룽 일가의 3대에 걸친 드라마틱한 인생을 그린 3부작으로써 1 <대지>, 2 <아들들>, 3<분열된 일가>로 구성되어있다.

1<대지>의 배경은 1900년대 초 중국사회, 화북지방 안후이성이다. 흙에 대한 애착이 강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 왕룽(王龍)과 황대인이라는 부잣집 여종, 오란(河蘭)과의 결혼식으로 시작된다.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단둘이 살던 왕룽은 오란과 결혼하면서 오랜만에 목욕도 하고 신부를 맞이하면서 가정일에서 해방된다. 왕따(王大)와 왕얼(王二) 두 아들을 산파도 없이 혼자 출산하고 밭일도 하면서 힘든 농사를 둘이서 꾸려나가고 추수한 돈을 모아 황대인의 땅을 조금씩 사면서 농사짓는 땅을 넓혀나간다.

심각한 가뭄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리던 왕룽에게 삼촌은 땅을 팔자고 했으나, 거의 거저 넘기라는 악덕중간상인의 제안에 왕룽 부부는 거절하고 먹을 것을 찾아 온 가족이 아주 싼값에 (가구를 판 돈 은전 두닢에 온 가족의 차비) 기차를 타고 남쪽지방 장쑤성으로 (江蘇省, 양쯔강 하류, 성도는 난징, 왕룽의 고향에서 천리길) 으로 이사해서 6장의 가마떼기로 부잣집 담벼락에 움막집을 짓고 오란과 아이들은 구걸을 하고 왕룽은 인력거를 끄는 힘든 일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고단한 생활 속에서 3, 왕싼(王三)와 바보천치 딸을 쌍둥이로 출산한다. 당시 중국 남부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그들이 기거하던 담벼락의 부잣집이 약탈을 당하는 와중에 오란은 부잣집에서 숨겨둔 보물들을 발견해서 그것을 밑천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뒤 기존의 팔지 않은 땅과 난징에서 가져온 보물을 팔아서 점점 몰릭해가는 황부자에게서 엄청난 농지를 헐값에 매입해서 대지주가 되어간다. 큰 홍수가 덮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심심했던 왕룽은 성안의 찻집에 드나들면서 연영이라는 젊은 첩을 들이고, 점점 부자가 되면서 마침내 황부자의 집까지도 사들인다.일자무식이었던 왕룽은 장남 왕따를 학자로 키우기위해 남부지방으로 유학을 보내고, 차남 왕얼은 상인으로 3남 왕후는 농사꾼으로 키우고 싶어했다. 일생을 농사와 집안일로 고생하던 오란이 사망하면서 장남 왕따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눌러앉고, 차남 왕얼은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돈을 벌어 돈 많은 상인이 되고, 늙은 왕룽은 연영의 어린 몸종 이화를 2번째 첩으로 들인다. 이화를 마음에 두고 있던 3남 왕싼은 이 일로 깊은 충격을 받아 가출하여 지방군벌의 부대에 입대한다. 1<대지>는 늙은 왕룽이 이화에게 자신의 정신지체아인 천치딸을 부탁하고 세 아들에게 땅을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으며 끝난다.

 

2<아들들>은 왕룽이 죽은 뒤 세 아들의 삶을 그린다. 부유하고 방탕한 장남 왕따, 인색하고 재산축재에만 여념이 없는 차남 왕얼 그리고 지방 군벌의 두목이 되는 3남 왕싼의 얘기지만 2부의 대부분은 왕싼에 대한 얘기이다.

왕룽이 이화를 첩으로 들인 충격으로 집을 떠난 후 왕싼은 한번도 돌아오지 않았으나, 왕룽의 장례식에는 그를 항상 그림자처럼 따르는 언청이를 비롯한 4병의 병졸과 함께 멋진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왕룽이 죽으면서 절대로 땅을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왕룽의 장례식날부터 이들의 알력은 시작된다. 왕룽은 자식들에게 모두 3백정보의 땅과 2채의 집(원래 살던 움막집과 황대인에게서 매입한 집)을 남겼고, 동네 유지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가졌다. 셋째 아들 왕싼은 자신의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왕얼에게 땅을 처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달라고 했고 특히 이화에게도 일정 금액을 추가로 보내주라고 했고. 거대한 황대인 집에는 왕따와 왕얼 가족이 거주하고, 왕따와 왕얼이 관심없는 왕룽의 움막집은 왕싼이 물려받았지만, 여기에 이화가 왕룽의 천치딸을 데리고 살도록 했다.

왕싼은 키가 훤칠하고 급한 성격과 굵직한 검은 눈썹을 가진 용맹한 사나이였고 집을 나간후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던 노장군의 반란군에 들어가 승승장구했다. 왕싼이 모셨던 노장군도 처음에는 학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순수한 반군의 지도자였으나, 반란에 성공한 뒤 향락에 빠지고 뇌물과 여자를 탐닉하는 것에 실망한 왕싼은 부하들의 열광적인 추대를 받아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반군대장이 되어 화적들을 차례로 진압해나가며, 이때 왕싼 대신 용맹한 호랑이라는 뜻의 왕후(王虎)라고 불리기 시작한다 (앞으로는 왕후를 사용). 왕후는 천성적으로 정의감이 강하고 부정한 일을 용서 못하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

왕후는 북쪽의 강한 화적떼였던 표범장군을 물리치고 잡아온 여자를 사랑해서 언청이의 강력한 반대에도 아내로 삼지만, 결국 그녀에게 배신당하고 여자에 대한 깊은 혐오감에 빠진다. 그 이후에도 왕후는 여러 곳에서 승리하여 많은 땅을 빼앗지만, 막상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조카들을 보내달라는 부탁에 두 형제는 상의 끝에 왕따의 연약한 둘째 아들과 왕얼의 곰보 큰아들을 보내지만, 원래 군인 체질도 아니고 연약한 왕따의 차남은 자살하고 반면에 왕얼의 곰보아들은 적응을 잘해 왕후의 오른팔로 성장한다. 왕후는 충성스럽고 성실한 언청이, 용맹한 천하장사 돼지백정, 지혜가 뛰어나 천명의 병사 몫을 하는 매, 세사람을 특히 신임한다. 매와 곰보조카를 새로운 점령지를 다스리라고 보내지만, 곰보 조카를 통해 매의 배반 계획을 알고 그를 제거하며 이를 계기로 진정 혈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갖고 싶어하여 형들한테 두 여자를 소개받아 혼인해서 군영으로 데려온다. 둘째 부인에게서 아들 위안을 낳고, 그 다음해에 첫째 부인이 딸 아이란을 출산했지만, 왕후의 관심은 온통 아들 위안 뿐이었다.

왕후의 첫째 부인, 노부인은 부잣집 의사의 무남독녀로 많은 유산을 받았으나, 아들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던 왕후는 아이린 모녀를 차별대우해서 이에 반발한 노부인은 외동딸 아이린의 서양식 교육을 위해 상하이로 이사해서 고아원을 경영하며 살고 있는 다정하고 침착한 성격의 신식 여자

왕위안(王元)은 평범한 농부의 딸인 둘째부인의 아들로서 아버지 왕후는 위안이 자신의 뒤를 이어 군벌책임자가 되기를 바래서 청소년기에 가정교사까지 붙여서 교육을 시키면서 일종의 정신적 압박을 가했고, 진정한 군인을 만들고자 남부의 사관학교에 보냈으나, “새로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서 중앙정부를 타도하고, 군벌과 외척의 지배아래 신음하는 민중을 구하자는 목적. 아버지를 타도해야 한다.” 라는 사관학교 맹세에 참여 안하고 늙은 아버지를 위해 사관학교의 교관들과 동지들을 배반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오면서 2부는 끝나며 이때 위안은 19세였다.

2부의 끝부분 : 왕후는 아들이 떠난 뒤의 고독감과 공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바쁘게 일을 했다…..그는 아들이 유학에서 돌아오면 이 지방의 통치권과 군대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몇 명의 호위병만 데리고 물러앉을 생각이었다.”

 

3부의 주인공은 왕후의 아들 왕위안이다.남부의 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던 위안은 자신의 아버지같은 지방 군벌들을 타도하는 목적의 혁명군을 탈출 아버지에게 돌아왔으나, 본래 군대를 싫어했기에 몰래 아버지의 부대를 탈출해서 왕룽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고자 하지만, 위안의 갑작스런 출현에 소작인들은 근처에 살고있던 왕얼에게 알리면서 왕후에게도 알려지고, 위안의 모친이 찾아와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거짓 핑계로 왕후의 부대로 데리고 간다. 애증관계의 왕후와 위안 부자,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흥분해서 뛰쳐나온 위안은 기차를 타고 상하이의 이복 누이 아이린의 집으로 향해서 왕후의 첫째 부인, 노부인과 아이란과 함께 살면서 대도시에서의 부유한 생활을 시작한다. 위안보다1살 어린 누이동생, 아이린은 세상물정 모르는 쾌락주의자이고 학업보다는 옷치장과 친구들과의 파티에만 관심이 있는 신세대의 명랑 소녀.

마침 위안의 큰아버지 왕따와 그의 가족들도 모두 상해에 거주하고 있었다. 비대한 왕따의 장남은 은행 부총재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차남은 어려서 자살, 3남은 어렸을 때 곱사등이가 되어 승려가 되었고) 4남 셍()은 시를 쓰는 문학청년, 5남 멩()은 구국혈맹에 가입한 혁명주의자였다.

원래부터 농사에 흥미가 있었던 위안은 상해의 대학에 입학, 농업과목을 수강하면서 실습농장도 열심히 다니지만 왕후는 계속 위안을 결혼시키려는 편지를 보내고 이에 위안은 반발해서 멩의 혁명운동에 가입해서 혈서를 쓴뒤 정식으로 당원이 되어 혁명 운동을 시작하지만 얼마 못가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사형당할 신세가 된다. 아들을 살리기위한 아버지 왕후의 각고의 노력으로 왕얼에게서 엄청난 돈을 꾸어 감옥에서 풀려난 위안은 셍과 함께 20살에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으로 출국해서 6년 동안 미국의 선진 농학을 공부하면서 위안은 윌슨 교수 3식구와 친해지고 딸 메리 윌슨과 교회도 함께 다니면서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은 반드시 동족과 해야 한다는 인생의 신념에 따라 메리의 사랑을 뿌리치고 학위를 받은 뒤 선진농법을 전파하기 위해 상해로 돌아온다. 위안의 독백 그러나 그 땅은 내가 돌아올 떼도 그대로 남아 있을 거야. 땅은 언제나 그대로니까….”

위안과 셍이 미국에 유학했던 6년 사이에 혁명이 거의 성공 단계에 진입, 멩은 혁명군의 부대장이 되어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더구나 멩의 대장은 예전 위안의 사관학교 시절 군사조교였던 사람이다. 즉 국민당의 세상이 된 것이다. 위안이 미국에서 귀국했을때 상하이에 마중 나온 메이링(美齡)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노부인의 양녀로 함께 살면서, 의사 공부를 하는 총명하면서도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침착한 여인 (당시 위안은 27, 메이링은 20). 한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메이링은 위안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면서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는 바쁜 생활을 해 나간다. 

6년전 위안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난 6년동안 미국에서의 학비를 대느라고 아버지 왕후가 왕얼에게 진 빛이 총 은화11,514닢의 거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느낀 위안은 자기가 평생동안 갚아나가겠노라고 다짐한다.

위안은 메이링에게 청혼했으나, 거절 당하고 노부인의 충고와 마침 새로운 수도, 남경에서 혁명군 간부로 일하는 멩의 요청으로 위안은 남경으로 가서 국립대학 강사가 되어 메이링과 거의 매일 편지 교환한다. 춘절 휴가때 위안은 상하이로 돌아오고, 셍의 귀국파티에서 메이링을 만났으나 아이린의 출산으로 휴가내내 만나기 힘들었던 메이링을 원망하며, 휴가 마치기 전날 밤 아이린의 남편 우 그리고 셍과 함께 춤추는 파티에 갔다가 만취가 되어 들어온 위안은 떠나기 전날밤 만큼은 단둘이 있고 싶었노라고 원망섞인 말과 함께 메이링에게 따귀를 맞고 절망속에 다시 남경으로 돌아온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힘든 남경에서의 생활 속에서 상관과 혁명세력의 (아마 국민당?) 부정부패에 실망한 멩은 다른 혁명군, 즉 공산혁명단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한다. 어느날 심하게 다친 왕얼의 아들이 남경으로 위안을 찾아와서 화적떼와 소작농들의 습격으로 왕얼의 집안도 풍지박살나서 모든 재산과 토지를 빼앗기고, 왕후의 군벌도 몰살당하고 깊은 부상으로 할아버지 왕룽의 움막에 피신해있다는 위급한 소식에 위안은 기차를 타고 움막집으로 향한다. 거의 운명직전의 왕후 곁에는 나이든 노인이 된 일생의 충복 언청이가 겨우 지키면서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가지 일들을 알려준다. 왕룽의 천치딸을 키우며 살던 이화는 천치딸이 죽은후 절에 들어가 왕따의 3남 곱사등이를 보살피다가 2년전 이화 본인도 사망하고.

위안의 출현에 다시 화적떼나 소작농들이 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속에서 죽기 전까지 아버지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에 힘들어하던 위안에게 노부인과 메이링이 움막집으로 찾아온다. 남편의 마지막을 보살피려는 노부인과 진실로 위안을 사랑하는 메이링의 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일동안 메이링의 정성어린 간병으로 마음 편하게 죽기 직전 왕후가 외친 마지막 절규는 그 놈들이 내 명검을 빼았아 갔어

위안과 메이링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라고 위안이 말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나의 느낌

3대에 걸친 왕룽 오란부부와 세 아들 그리고 손자들에 대한 대하장편소설이지만, 제목 <대지>에 대한 각자 생각이 다른 3대 주인공의 얘기이다. 1대 왕룽은 셋째 아들 왕후가 농부가 되기를 바랬으나, 왕후는 원래부터 농사에는 관심이 없어 지방 군벌 대장이 되고, 왕후는 아들 왕위안이 자신의 군벌 후임자가 되기를 바랬으나, 왕위안은 진정으로 대지를 사랑하는 농부가 되고자 한다. 부모가 아무리 간절히 원하더라도 자식은 나름대로의 나아갈 길을 본인 뜻대로 정하며 이는 예나 제나 똑 같은 사실 아닌가? 특히 펄벅은 왕후와 위안과의 애증관계를 중국인이 아니면서도 아주 예리하게 표현했다.

소설을 통해 1900년대 초반 중국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렸다. 돈 많은 부인들은 아편을 피우며 일찍 늙어가고 일부다처제와 첩을 전통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유연애로 바뀌는 과정을 그렸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왕후(왕룽의 3) 이다. 부정한 일을 용서 못하고 적장의 여자라도 사랑하는 순수성에 꽃혔지만, 한편으로는 무모한 고집불통은 오히려 그의 몰락을 재촉한다.  

작가 소개

펄벅은 1892 6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즈보로에서 출생 생후 3개월만에 선교에 나선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떠나서 20세까지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의 실제생활을 경험함, 미국에서 대학졸업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결혼했고 남편과의 이혼 후 미국으로 돌아와 인권운동을 시작함.

1931년 존 데이 출판사 (The John Day company, 남편이 발행인) 에 의해 <대지> 출간되었고, 미국에서 퓰리처상 수상, 그 해에만 200만부 가깝게 판매되고,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아직까지 1930년대 전반기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어있다. 1932 <아들들 (Sons)>, 1934 <분열된 일가 (A House Divided)>를 발표하고 미국 여성 작가 최초로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

1973 36  버몬트주 댄비의 자택에서 80세로 사망, 지금은 펜실바니아주 벅시 카운티의 존 저택에서 가까운 농장에 자신이 미리 잡아둔 물푸레나무 아래 묘소에 잠들어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여러 편의 소설을 썼는데, 가장 유명한 소설은 1963년에 발표한 살아있는 갈대 (The Living Reed), 같은 해 장왕록박사에 의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는 제목으로 미국과 동시에 출판되었다.

펄 벅은 무려 80편의 소설, 단편집, 전기, 평론집을 발표한 세계에서 드물게보는 다산(多産) 작가였다. 평화주의자이자 자선사업가로서 우리나라에도 1964년 경기도 부천에 혼혈아를 위한 한국펄벅재단을 세웠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란 스스로를 정신적 혼혈아라고 불렀다. 1960년에 한국을 방문, 유한양행 유일한박사와의 인연으로 1965년 부천시 심곡동에 펄벅재단, 1967년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했다 소사희망원은 1976년에 문을 닫을때까지 2,000여명의 전쟁고아와 혼혈아들을 돌보았고, 실제로 부천에서 만난 2명의 혼혈아를 스스로 입양했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여 대지3부작을 번역한 서울대 장왕록교수와 그의 딸 서강대 장영희교수와 깊은 친분을 쌓았으며, ‘최진주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 <대지(The Good Earhth)>

138분 짜리 흑백영화로서 1937년에 Metro Goldwyn Meyer 에서 제작, Sydney Franklin감독 작품이다. 원래 펄벅은 중국 배우들을 등장시키기를 원했으나, 헐리우드의 제작진들이 황인종을 주연으로 시킬수 없다는 주장에 Paul Muni(왕룽) Luise Rainer(오란)이 주연하여서 1938년 제 10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Luise Rainer)과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당시의 초보적인 촬영술로 메뚜기떼의 기습을 잘 표현했다는 평이었다. 영화는 오란이 사망하는 1부 까지만 제작되었고, 아쉽게도 1937년 이후에 한번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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