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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권당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읽고나서



만권당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읽고나서

                                                                                          2023.02.03 정창섭


모임 일시: 2023년 02월 03일 금요일 10:30∼12:00

장소: 출판사 미래의창 북카페 (합정역 근처)

참가자: 김민주, 백웅기, 우영우, 윤여철, 정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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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만권당의 2023년 새해 첫 모임, 그리스의 대표적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토론하기 위해 미래의창 북카페 모였다.

한 대형서점의 통계(2019년 전후) 에 의하면 한국의 20~30대가 가장 많이 구입하는 외국소설은 헤세의 <데미안>이고, 40대 이후의 장년층이 구입하는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라 한다. 왜일까? 무언가 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터프가이의 삶에 동경을 느껴서일까?

지난 해 만권당에서 오스만 제국을 다룬 <하얀 성>을 읽고 나서, 고대 그리스의 영광에 비해 초라해진 근대 그리스의 역사가 궁금하여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근원지이지만 BC 388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아테네가 정복된 이후 사실상 세계무대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온전한 독립국이 된 것은 1830년이다. 특히 1453년부터 시작된 오스만제국(지금의 튀르퀴예)의 지배는 무려 377년이나 이어졌으며 그 결과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이웃이면서도 숙명적인 적대국이다.

1시간 반 정도 토론 포인트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시간을 가졌고, 12시에 근처 유명한 그리스 식당인 <그릭 조이>에서 다양한 그리스 음식문화를 체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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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는 조르바 역으로 안소니 퀸이 주연을 한 영화로도 제작, 특히 영화 속 크레타섬의 백사장에서 주인공과 함께 추는 조르바 댄스는 유명하다. 우리 멤버들은 한강 공원에 나가 조르바 댄스를 재연해 보려고 했으나 날씨가 쌀쌀하여 후일로 미루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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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및 소설 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러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후에 여행기를 출간한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에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는 이듬해부터 집필한 붓다와 오딧세이아에서 구체화 한다.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한 1941년~1943년에『조르바의 성스러운 삶』과 『붓다』를 집필 완성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聖化)'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사색과 행동등등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미할리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1957년(75세) 중국을 다녀온 후 아시아 독감으로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고향 크레타에 안치된다. 뒷날 묘비에는 생전에 준비해 두었던 묘비명이 새겨진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줄거리 

 1. “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작품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30대 중반인 나(화자)는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 절친한 친구와 헤어진 직후 이다. 친구는 카프카스에서 고통받는 동포를 구하러 떠났다. 나를 향해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 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사는 책벌레라고 비난과 연민을 보내면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를 크레타로 향하게 만들었다. 폐광이 된 갈탄광을 빌려 노동자, 농민들과 살아보기 위해서다. 생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온 몸으로 부대끼고 싶어서다.

그리고 조르바를 만났다. 조르바는 60대 중반의 광부였다.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가 눈동자가 맑고 예리했다. 헌털뱅이 같은 이 60대 노인은 대뜸 나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짧은 만남에서 쏟아 내는 말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조르바에게 이끌린다. 그렇게 나는 과거에 광부로 일했다던 조르바를 자신의 탄광사업을 지휘하는 일을 맡기기로 하고 크레타섬으로 함께 들어간다.

2.국왕과 크레타 출신 정치가 베니젤로스를 놓고 왕이니 공화정이니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르바는 침을 탁 뱉고 빈정거린다. 조르바가 보기에는 그 따위 이념과 주의는 녹슨 고물총이나 다름 없었다. 조르바는 모든 미망에서 벗어난 존재다. 애국심의 원천인 ‘신’과 ‘천당’에 대한 믿음이 또한 없다. 사람들이 조국이나 천당 같은 우상에 매달리는 것은 허무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구더기 밥이 된다는 점에서 모두 한 형제다. ‘조국과 신’이라는 우상에서 벗어나자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연민이 솟구친 것이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 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3. 나는 낭만적인 구상을 하기도 했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일종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갖고 형제들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한 향제처럼 지낸다. 마음속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낌새를 눈치 챈 조르바는 곡갱이를 집어 던지며 역정을 낸다. 조르바는 근본적으로 ‘인간’자체를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짐승이다. 오직 힘의 원리만 지배한다. 그러니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래서 그 인간에 대한 전제가 틀렸다면 공동체고 혁명이고 단숨에 몰락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조르바는 다르다.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그들과 함께 한다. 위기가 오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하지만 어떤 보답도 원하지 않는다. 근원적 연민 이외에 어떤 기대치도 없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조르바가 말하는 것은 삶이다.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지 못한다면 어떤 혁명도, 이상도 다 ‘허깨비’에 불과하다

4. 두 사람은 오르탕스 부인의 여인숙에서 머문다. 그곳에서 나는 낮에는 탄광을 돌보고, 밤에는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조르바의 삶을 보면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조르바의 신체적 특징은 ‘푸짐한 입’이다. 그 입으로 쉬지 않고 먹고 마시고 떠들어 댄다. 그리고 언제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조르바는 과부이자 호텔 주인인 오르탕스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쾌락과 소유에 함몰되지 않는다.

조르바의 말처럼 먹는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의식이다.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음식이 조르바의 오장육보를 거치면 ‘노동과 유머, 그리고 사랑’이 된다.

5. 조르바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도 하지도 억압하지도 않는다. 조르바는 어릴 적 버찌에 빠진 적이 있었다. 버찌 한 소쿠리를 사서는 도랑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다. 먹고 또 먹고 ..... 토할 때까지 쉬지 않고 먹어 댔다. 그러고 나서 끝! 그날부터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술과 담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여전히 술 담배를 하지만 언제든 끊을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욕망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결코 욕망에 휘둘리지 않은 기술이다. 그는 말한다. 욕망은 삶의 원초적 토대다. 그것이 없으면 삶을 추동할 엔진이 사라진다. 그 엔진은 늘 활기차게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문득 그 맛에 도취하여 거기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 인간이 처한 숙명이다.

그래서 금욕을 강조하는 종교단체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조르바와 내가 찾아간 수도원이 바로 그 증거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곳을 움직이는 건 돈과 동성애, 치정살인이다. 그래서 조르바는 금욕주의를 믿지 않는다. 설령 성공한다 한들 거기에서 무슨 생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6. 그에게 있어 여자란 ‘무서운 수수께끼’ 다. 지나가는 여자를 봐도 그는 말을 멈추고 큰 일이나 난 듯이 떠들어 댄다. “ 대체 저 신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그가 보기에 여자는 토라지기를 잘하는 동물, 암컷이다. 그래서 여자를 만나면 남자는 무조건 ‘갖고 싶다’고 말해야 된다. 여자란 가엽게도 그걸 원한다. 하지만 그는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은다. 그는 여자를 진짜 사랑한다. 그 사랑은 소유욕과 성욕 따위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랑이란 여자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크레타 섬에서 만난 과부 오르탕스 부인은 퇴물 카바레 가수다. 조르바를 그녀가 자신의 황금시대를 추억하도록 유도한다. 그 시절이 그녀에게 생의 절정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 조르바는 후끈 달아 오른다. 이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암컷’이었다. 젊든 늙든, 아름답든 추하든 용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있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 오른 것이다.

그녀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조르바의 ‘사랑법’이다.

6-1 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과수댁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유혹의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그녀와의 실전을 격렬하게 저항한다. 붓다의 노래를 베끼면서 붓다를 쳐부수겠다면서 붓다의 품으로 도주한 것이다. 하지만 갱도가 무너져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과부은 ‘내 속으로 들어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음이 명령하고 그녀의 품속에 뛰어든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이고 육체가 곧 영혼임을 깨닫는다.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7. 작품안에서 두가지 죽음이 등장한다. 하나는 마을의 ‘팜프 파탈’인 과수댁, 하지만 그 매력이 그녀를 엄청난 비극에 빠트린다. 마을 청년이 과부에게 마음을 표현했다가 거절한 일을 계기로 자살하면서 마을 일대가 소란했던 날, 과부를 죽이려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아 세운 건 조르바였다. 그는 온 마을이 여자 하나를 죽이려고 몰려다니는 비인간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그들을 꾸짖는다. 하지만 이들은 과부를 기어코 죽인다.

그 뒤를 이어 오르탕스 부인 또한 폐렴에 걸려 임종을 맞이한다. 이웃들은 그녀가 죽기도 전에 그녀의 물건들을 약탈하는데 급급하다. 그 소동 속에서 조르바는 그녀의 존엄성을 지켜준다. 동네 유지들은 부인이 유럽인, 이교도라는 이유로 시신을 종교의식없이 구덩이에 묻는다. 조르바는 인간에 대한 회의를 가진다.

8. 처음 두목과 만났을 때 그의 옆구리에는 보따리 하나가 있었다. 산투르라는 악기를 싼 보자기. 산투르는 그의 화신이다. 그는 그것을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양 소중히 다루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대화를 나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종의 범신론다다.

갱도가 무너질 때 그 걸 가장 먼저 감지한 것도 그다. 절체 절명의 순간이건만 그는 사람들을 다 구출시키고 맨 나중에 빠져 나온다. 죽음 앞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내공, 그것이 그가 여자를 사랑할 때처럼 일과 광산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먹을 때는 먹는 것만, 일할 때는 일만, 사랑할 때는 사랑만! 순간에 충실한 삶, 그의 삶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 오직 ‘지금, 여기가’ 있을 뿐이다.

9. 조르바에게 있어 춤은 사물과 우주와 소통하는 몸짓이다. 러시아에서 동광일을 할 때 러시아 친구와 춤으로 살아온 내력을 다 표현한 적도 있다. 말을 더 크게 하면 춤이 된다.

조르바는 철탑과 케이블을 이용해 거대한 소나무 목재를 바다로 내 보내는 계획을 실행하나 철저하게 실패한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나는 그 순간 뜻밖의 해방감을 맛 본다. 그리고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 천사같았다. 다음 날 나는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던 것이다.

10. 나와 조르바는 각자의 길을 간다. 이후 조르바는 세르비아에서 동광 주인이 된다. 그리고 세르비아로부터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 조르바의 최후가 초인처럼 죽음을 맞이했다고 쓰여있고, 자기의 산투르를 젊은 보스에게 주겠다는 뜻을 전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토론 (종합)

 

1. [그리스]하면 연상되는 이미지 ?

신화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 그리스 철학,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산토리니의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의 집들, 선박왕 애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유로존 재정위기와 가두 시위.혼란, PIGS , 바이런의 그리스독립전쟁 참전 사망, 놀고 먹고 마시고 등등

 

2. 소설의 무대인 크레타 섬의 역사와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 파란만장한 크레타섬의 역사

◦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B.C 2000년~1700년) 의 중심이었으나, BC 388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도시국가의 패망, B.C 150년 로마의 속주가 된다.

◦ 로마의 패망이후 크레타는 동로마제국(비잔티움 제국, 395년~1453년)의 일부로 남았다. 그러나 이베리아 무슬림이 826년 크레타에 해적 토후국을 세운다. 960년 비잔티움이 다시 섬을 수복하여 1204년까지 비잔티움 영토로 남았다. 그러다가 4차 십자군 원정 때 베네치아가 4백여 년간 지배한다.

◦ 1669년 오스만 제국이 21년간의 칸디아 공성전을 벌인 끝에 크레타를 정복한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대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모스크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와 권리는 계속 보장되었다.

◦ 대부분의 크레타인 이슬람들은 크레타 그리스어를 쓰던 지역 그리스 개종자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크레타의 정치 상황에서 그리스도 교도들은 이들을 터키인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리스 독립전쟁 직전에 크레타 섬 인구의 45%가 이슬람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크레타 그리스 정교 출신이었다. 나중에 터키, 로도스, 시리아 등지의 사회 불안으로 많은 이슬람이 섬을 떠나자 남은 자들은 다시 그리스 정교로 돌아오게 된다. 1900년에 섬 인구의 11%만이 이슬람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1924년 터키-그리스 인구 교환 때 섬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 크레타는 1830년 런던 의정서로 근대 그리스 국가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얼마 안 되어 이집트의 술탄이 섬을 침략하여 지배를 받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1840년 6월 3일 런던 회의로 오스만 제국 영토로 돌아온다. (1830∼1840년 그리스 영토)

◦ 1833년에서 1897년까지 그리스 정교도의 반란이 몇몇 일어났다. 1898년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 밑의 자치령으로 있었다. 결국 크레타는 1913년 12월 1일에 그리스 영토가 된다.

◦ 1920년 로잔조약에 따라 동트라키아가 튀르키예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대신 에게해의 섬들은 임브로스와 테네도스를 제외하면 튀르키예 본토 아나톨리아 반도 코앞에 있는 것까지 그리스에게 넘어갔다.

□ 소설의 배경은 1920∼30년대 크레타 섬

◦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건에 관한 언급은 없으나 작가가 실존 인물 조르바를 만났던 1920∼30년대로 추정된다.

◦ 작가가 태어난 1883년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으로 있었으나, 제1차 발칸전쟁(1912년) 이 끝난 후 1913년 그리스 영토로 병합되었다.

◦ 이어서 2차 발칸전쟁(1913년), 그리스 제1차 세계대전참전(1917년), 2차세계대전 참전(1940년) 등 동서양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시대 공간이었고, 당시 크레타는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의 종교 갈등의 최전선이기도 하였다.

 

3. 소설 속에 아흔 노인과 조르바의 대화가 나온다.

노인과 조르바의 “죽음을 대하는 삶의 양식”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조르바) 아몬드나무를 심고 계시네요? (노인)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 조르바)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 노인의 인생은 젊은이보다 짧을지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몬드나무를 심는다. 노인에게는 다가오는 죽음이 현재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산다. 그러나 또 다른 노인 조르바에게는 죽음이 지금의 삶으로 부터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 사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아몬드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삶

-카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의 삶

-방향은 노인과 같이, 구체적 삶의 자세는 조르바처럼, 영원한 삶이 있고 그 곳에서의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지만 내일이 없다는 자세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 지향

 

4. 조르바의 여성편력, 여성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조르바의 여성관은 “여자는 덫을 놓고, 사내는 그 덫에 걸린다. 암컷 과부를 돌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지어다. 훔친 고기는 맛있다.” 등등 카사노마 형의 연애관으로 현 시대기준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5. 오르탕스의 장례에서 주민들의 유품 탈취, 과부의 죽음 방치, 방화범인 수도승의 죽음을 처리하는 수도원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

- 당시 시대 상황과 사회제도 및 문화적 배경(과부에 대한 인식과 법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토리 자체보다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의 아이러니를 신에게 불평하듯이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크레타 주민의 생활 속에 그리스 정교가 깊이 들어와 있지만, 막상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가식적인 삶의 실상을 고발하고, 수도원 생활의 세속화를 풍자하여 부패하고 가식적인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젊은 시절 카잔차키스는 수도자들이 은둔하는 아토스 산(山)에 올랐다 거기서 고행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믿음에 대해 환멸을 경험

- 마을 사람들은 오르탕스 부인이 네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리기 때문에 정교회 교인이 아니라고 한다.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장례식도 치러 주지 않는다. 종교적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작가 모습.

- 압제에 눌려 살아가는 크레타의 기층민들.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약한 지식신인 화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다.

6. 갈탄사업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주인공은 조르바와 함께 환희의 춤을 춘다. 왜 그랬을까?

-책에서 나(화자)는 “ 외적으로는 참패했을 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 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외적인 재앙이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라고 술회한다. 갈탄 광산의 갱도 뚫기는 실패 했어도, 사업의 집착(구속)에서 해방되어 마치 영혼의 갱도를 뚫었을 때의 환희를 맛보게 된다.

-슬픔과 기쁨은 분명하게 대조된다. 그러나 조르바의 감정 표현은 다르지 않았다. 기뻤을 때 추던 환희의 춤은 극도의 상실감으로 가득 찬 슬픈 마음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나 할까? 조르바가 자신의 3살짜리 아들이 죽었을 때 그의 시신 앞에서 춤을 추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조르바는 그렇게 표현한다. 조르바에게 춤은 자아를 극복하는 몸짓 언어이다. 사람들이 다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7. 작가는 조르바의 삶의 양식에서 어떤 점에 호감을 느끼는지? 당신의 생각은?

- 작가는 온갖 관념과 형이상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던 자신과 달리 육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이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춤에 몸을 맡기고, 여인을 향한 자신의 욕망에 항상 충실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일 마저도 거리낌이 없는 조르바의 행동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 인간은 갖고 있는 자기와 반대되는 성향을 추구하는 성향이 작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작가는 조르바가 가식적인 삶의 틀에서 자유롭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즉 인간 본연 (성욕,식욕,일) 에 충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타고난 기질로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겠지만 가식없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본 받고 싶다.

- 조르바는 작가에게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한 인물이다. 조르바의 첫인상은 작가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을지라도, 작가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 화자는 용기가 부족하고 수동적이며 머리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조르바는 빠르게 결단하고 행동했으며 집착하지 않았다. 화자는 붓다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 조르바의 조언에 따라 과부의 집을 찾아갔다. 화자는 마지막에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제안함으로써 조르바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나는 두려움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점에서는 조르바와 같으나, 그런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서는 다르다.

- 일부 당원은 비호감, 본 받을 점이 없은 저질, 3류 인생으로 평가

 

8. 작가가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으로 부터의 자유인가?

- 작가가 생각하는 자유는 기존 질서로부터의 자유다. 정치적으로는 오토만 제국으로부터의 자유, 종교적으로는 정교로부터의 자유(엉터리 수도승), 경제적으로는 돈으로부터의 자유, 성으로는 여성으로부터의 자유(조르바는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고 여성편력을 보임).

- 모든 것으로 부터의 자유( free of charge ) , 진리대로 사는 것

- 과거와 미래로 부터의 자유

- 기존의 도적적, 종교적, 사회적 가치관과 인간이 갖는 슬픔과 죽음으로부터 자유

-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투쟁은 그의 조국 크레타를 튀르키예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는 투쟁, 두번째 투쟁은 내부의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으며, 세번째 투쟁은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투쟁은 결국 자유와 해방으로 귀결된다. 육체적 해방, 감정적 해방 그리고 정신적 해방이 그것이다.

9. 소설 내용중 감동을 주는 문장은 ?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디미트라키가 죽었을 땝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조금 전처럼 춤을 추었지요. 친척과 친구들이 달려들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 버렸다! 조르바가 미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군요. 하지만 그때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너무 슬퍼서죠. 그게 내 첫아들인데다, 세 살 때 죽어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행복을 체험하는 동안에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오직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 볼 때만 우리는 갑자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는다.

 

나는 엊그제 일어난 일을 생각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말들은 그의 존재 깊숙이에서 나왔고 그래서 아직 사람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 진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노인의 언어에는 그 어떠한 이미지도, 체면도, 양식도 없다. 때문에 저 조르바 앞에서 스스로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던 ‘나’의 고백은 곧 나 자신의 것이자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고백이 되고 만다.

 

“이것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가 없어.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되네”

조르바의 이 짧은 이야기에서 나는 강력하고도 맹목적인 필연이라는 갓에 맞설 때 인간이 어떤 태도와 어조를 취해야 하는지를 감득했다.

 

 

10. 소설 등장 인물중 인상적인 인물은 ?

다수가 조르바

-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인간(위버 멘슈)

- 오직 현재만 의미 있으며 그 때문에 집착하지 않는다. 극도의 슬픔과 사랑을 춤으로 표현할 뿐 미사여구로 포장된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11. 소설의 핵심 키워드 ?

자유, 하나님(악마), 영혼, 속물, 크레타, 붓다, 춤,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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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만권당 후기 역시 멋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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