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신우회 정기예배 후기

말씀: 최명진 목사                                     2023년 12월 11일




사랑의 절기(요일4:7-12)


우리는 대강절기 둘째 주간에 있습니다.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입니다. 성탄절!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절기입니

다. 우리는 아기예수로 오신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

고 있습니다. 이 좋은 절기를 가르켜 사랑의 절기이라고 말합니

다. 왜냐하면 본문 9절에서 이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를 살리시려 이 땅에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기 때문입

니다.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느냐에 대해서는 누가복음에 기록

된 이사야의 예언에서 알 수 있다시피(눅4:18,19) 주님은 가난

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눈먼이들이 다시 볼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61:1).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

다. 이 사랑의 절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부모를 잃고 고아가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

습니다. 게다가 품행이 나빠 학교에서 골칫덩어리입니다. 선생

님들도 그 아이 때문에 머리를 흔듭니다. 그 아이의 인생은 위

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이 때 어느 가정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너 아무개 알지? 그 아이가 얼

마 전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이제 그 아이들 돌볼 사람

이 아무도 없어. 더구나 그 녀석은 품행도 나쁘고, 성적도 형편

없다면서.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네가 그 녀석과 좋은 친구

가 되라. 공부도 같이 하고, 마음을 좀 어루만져 주라구. 너 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아들이 부모를 잃은 아이

를 찾아갔습니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우리 아버지가 원하셔, 널 잘 도우라고 하셨어. 우리

가까이 지내자. 공부도 나와 함께 하자구. 내가 가르쳐 줄게. 그

리고 이제 못된 녀석들과의 관계는 정리해. 이젠 나와 친구가

되는 거야!> 그 녀석은 처음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나중엔 감

동이 되어 둘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아들에게 도와주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듣고 찾아가는 아들은 예수

님입니다. 그리고 못된 짓을 하는 아이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


은 문제아와 같은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서 <

친하게 지내자>고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을 보면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

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함

께 친하게 지내길 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중요합니다. 만약 내미시는 손을 거절하면서 <

난 나 혼자가 좋습니다. 난 누구와 함께 지내는 게 질색입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절대로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주님과 함께 하는 데서

얻습니다. 함께 지내는 데 실패하면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 힘듭

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을 잘 살기를 원하십

니다. 첫째는 주님과 함께 하고, 둘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

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

니다. 이 말씀은 육십을 바라보는 초로의 바울 사도의 거짓 없

는 사랑고백입니다. 그는 그들을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사실 바

울의 인생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족이 있었

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람이었습

니다. 그렇다고 재물이 있었습니까? 역시 없었습니다. 명예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바울에게 마음을 바

쳐 사랑할만한 대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대상은 오직 한 분

주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치가 멋진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대할 수 있나요? 두툼하고 따스한 코트 한 벌을 사 드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

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단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으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 마음으로만 사랑할 뿐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울은 일찍부터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데 모든 것을 걸고 살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었기에 바울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사랑

했기 때문에 전도 여행을 했고, 사람 사랑 때문에 고난을 받았

고, 사람 사랑 때문에 민족을 사랑했고, 사람 사랑 때문에 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모든 사역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루

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도 사람들을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

수님도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

도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도 사

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했습니다(롬15:3 그리스도

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우리도 이웃을 기쁘

게하고 선을 이루며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로마서15:2)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두 가지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

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

니다. 이 둘은 결국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22:37,38)

제가 시민운동을 하는 것도 하나님 사랑이라는 명제 아래 사람

을 사랑하고 이 민족을 사랑하며 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

다.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고 이들의

역사가 찐 역사이며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의 적은 일본이지 북한이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입니다. 세계의 암초입니

다.

이런 역사 왜곡자들은 건국 이승만을 부정하고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합니다. 우리가 이태 것 배운 역사가 다

잘못되었고 그래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미명 아래 자본주위가

잘못되었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주의를 주장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

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를 바

로 잡으려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결고리를 더 든든하고 아

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돈을 더 많이 벌

지 못한 것, 더 성공하지 못한 것, 더 배우지 못한 것 등을 후회

합니다만, 가장 최후에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는 존재입니다.

1945년 4월 30일 오후 3시30분쯤, 독일의 비밀스런 지하 벙커

에서 한 발의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입에 권

총을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스스로 청산가리를 마시고 죽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남녀

의 자살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이 누구였을까

요? 남자는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히틀


러>였고, 여자는 히틀러가 사랑한 23세 연하의 여인 <에바 브

라운>이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두 사람이 죽기 바로

전 날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1929년에 처음 만났

고 비밀스런 관계가 이어져 왔습니다. 전쟁이 독일의 참패로 거

의 끝나서 아무 희망이 없던 4월 29일,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가

전쟁을 지휘하고 있던 지하 벙커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괴벨

스를 증인으로 삼고 그 날 새벽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날

오후 히틀러와 함께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독재

자 무솔리니가 애인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뉴스가 전해졌습

니다. 그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오후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도

자살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히틀러를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광, 독재자, 그리고 유대인을 육백만 명이나 죽인 살

인자로 생각합니다. 그는 결혼마저도 <당이 정권을 획득하고

국가를 높은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헌신하는 데 방해가 된다

>면서 반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을 때, 맨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한 여인의 사랑이었습니

다. 에바 브라운도 <히틀러 없는 독일>에서는 살기 싫다고 하

면서 결혼과 죽음의 의식을 한꺼번에 치르기 위해 지하벙커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생애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사

랑이었습니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한 남자의 최후의 관

심사는 전쟁도, 독일 제국도, 유대인 학살도 아니었습니다. 단

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구비

되어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

을 만드시고 거기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그가 사

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하

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다른 조건이 다 구비되었다고 하더라도 사

랑하고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

랑이야말로 에덴을 완성하는 마침표였습니다. 사랑 있는 곳이

에덴입니다.

여기 사랑 없이는 못산다는 남자의 고백어린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챙기기 보다 남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고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최고로 치는 이유가 여기

에 있습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도 기술이

고, 사랑 받는 것도 기술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요, 사랑

받기를 거절하는 것도 죄입니다. 사랑이 성취되는 곳에서 우리

신앙은 놀랍게 확장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


님과의 수직적 신앙이 수평의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위를 향하

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수평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펼쳐

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

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

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

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 사랑의 계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람

을 사랑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 사람들을 잘 사랑하셨습니까? 아니면 잘못된 사랑을

하셨습니까?

많이 사랑하셨습니까? 아니면 마음을 닫고 조금만 사랑하셨습

니까?

진실하게 사랑하셨습니까? 아니면 가식적 사랑을 하셨습니까?

건강한 사랑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해서는 안 될 병적 사랑을

하셨습니까?

열매가 풍성한 사랑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메마른 사랑을 하셨

습니까?

상처가 치유되게 하는 사랑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그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사랑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조국을 사랑하라. 사회를 사랑하라...> 이런

식으로 거창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사람 낚는 어

부가 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 이 말은 <사

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

음으로 죽어 가는 이들을 건지고, 아픈 이들을 섬기라는 말입니

다. 그게 제자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

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 이것이 제

자의 길이었습니다. 결국 제자도란 <사람 사랑의 도>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시기까지 그는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 때까지 베드로

는 고기 외에는 잡아본 일이 없습니다. 고기는 언제나 그의 머

리 속에서 일정한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한 마리에 얼마, 오

늘은 몇 마리니 모두 얼마>라는 식으로 계산하였습니다. 그는

그 가치에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번에는 <고

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사람을 낚으라, 사랑하라>고 하

셨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생명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숫자로, 양으로,

액수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을 낚으려고 하지말고, 돈으로 계산되

지 않는 것, 생명에 관계된 것,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을 낚

는 낚시꾼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숫자의 지배를 받아 비인간화되

고 있습니다. 사람을 숫자로 판단합니다. 숫자로 판단해서 크고

많은 것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몇등하냐, 재산

은 얼마냐, 집은 몇 평짜리냐, 차는 몇CC냐, 키는 몇이고 몸무

게는 얼마냐등. 또 교회에 대해서도 <그 교회 사랑과 은혜가 있

습니까?>라고 묻는 대신에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되었나요? 교

회당은 얼마나 큽니까? 교인은 얼마나 모입니까? 예산은 얼마

나 되는지요?>라고 묻습니다. 목사님에 대해서도 <그 목사님

이 얼마나 진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분입

니까?>를 고려하는 대신에 <학벌은 어떻고, 인물은 잘 생겼습

니까? 몇 명 신도의 교회 목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숫자로 표시되는 곳에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렇게 계산

적이다 보니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갖지 못하고, 사랑에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은 자칫 잘못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조건, 즉 상대방의 돈이나 직업, 지

식과 결혼하게 됩니다. 얼마간 지나면 그것들이 편리함은 가져

다 주지만, 행복은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공허감에 빠

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이>를 묻지 않으시고, <무엇>과 <어떻게>

를 물으십니다. 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았어도, 사람 사랑에 실

패한다면 결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당당히 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운 이들을 보아도 마음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슬픈 일을 당한 사

람을 보아도 우리 마음이 바싹 메마른 채로 있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을 볼 때 <한번 친하게 지내볼 만

한 사람,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 정도로 여기고 그

를 이용하려고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베푼 친

절과 도움은 모두 가식입니다.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유명한 <나와 너>란 책에서 상대

방을 <그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인 <너>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만 사랑하셨

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 무엇을 탐내신 것이 아닙니다. 누

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오는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

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영접하는 것은 그가 엄청난 돈

을 벌어 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출세해서 돌아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거지가 되고, 돼지와 함께 뒹굴다가 돌아오지


만, 무조건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그 아들을 사랑할 뿐

입니다.

바울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사랑을 근거로 대하였습니다. 빌

4:3절에 그는 사람들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

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아멘. <나와 멍

에를 같이한 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 <나의 동역자

들>, <함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 이게 다른 사람을

향한 바울의 시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길, 복음의 길,

천국으로 가는 생명의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대해

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마음을 하나로 해서 함께 그 길을 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2절을 보세요.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

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사랑하는 이

들과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천국을 향하여, 동일한 사

랑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 되어 살아야 합니다.

김숙곤 님의 <소중한 시간에 우리 그렇게 하자>라는 시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 빨리 달려도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 오직

한 세상이다

더러는 조금 살다가 / 더러는 오래 살다가 / 우리는 가야할 곳으

로 떠나간다

소중한 시간에 / 우리 사랑하며 살자 / 우리 이해하며 살자 / 우

리 그렇게 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 / 지난 날 돌이키며 후회하기보

다는

남은 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 희망을 걸어 보자 / 행복을 찾아

내자

마침내 / 바람에게도 / 돌멩이에게도 / 보이지 않는 마음에게도 /

고마움을 느끼며

정다운 사람들과 오붓하게 / 웃음을 나누는 일에 / 참 행복을 느

끼는 /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자 / 우리 그렇게 하자.

올해의 남은 시간, 우리의 남은 생애 전체를 통해서 이 사랑의

계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면

서 살아가길 주님이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분들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주시기를 바라며 그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이상)




2023년을 맞아 새로 시작된 신우회 모임이 벌써 1년을 마치면서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게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연말 총회가 열리기로 되어있어서 내심 많은 신우회멤버들이 모이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날씨떄문인지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다. 오늘 말씀은 최명진 목사가 사랑의 절기란 주제로 말씀을 주었고 대표기도는 김선영이 맡아주었다.


오늘은 연말총회가 있는 관계로 에배를 마치고 연말총회의 일을 마치고 나서  혜화동에 있는 아주 오래된 진아춘이란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모두 함께 하였다.


정기 총회는 개회사, 회계감사보고, 임원선출, 차기 회장의 인사및 패회선언으로 진행되었다. 회계감사보고는 김 영일이 맏아 주었고 2024년 신우회 회장으로 백웅기가 추대 되었고 만장일치로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다. 지난 1년간 신우회 회원들과 한 해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지낼수 있게 도와준 우리 모든 신우들의 노력과 헌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김용석이 2부 예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 하여 주었고 이끌어 준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6회 동기및 그의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참석자:  강대윤, 김선영, 김영일, 김용석, 김창영, 김춘도, 백웅기,  신기현, 이세헌, 이영수, 정창섭, 최현일, 한준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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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해 새로운 방식으로 신우회를 이끈 춘도 고마워요. 새해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전도하며 위로하는 귀한 신우회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춘도회장 사랑의 수고 믿음의 헌신에 감사드려요
    새해 웅기회장 신우회에 채워주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기도합니다